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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목회칼럼

      상징이라는 것은 인간 역사에서 늘 중요한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언어도 하나의 상징 체계지요. 단어 하나 하나에 정해진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의사 소통을 합니다. 사실 인간이 사용하는 상징체계는 언어 이상입니다. 사실 사람은 말보다는 행동에 의해서 더 많은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심볼(상징물)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 특별히 개신교회가, 언어 외에 다른 상징 체계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존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던 것을 개혁하려고 잡아당기다 보니 우리는 도리어 반대쪽으로 너무 멀리가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특징 중에 하나가 상징의 언어를 다 버린 것입니다.  말로 설명하면 오래 걸린 것이 작은 심볼안에 담길 수 있습니다. 작은 상징적 행동 안에 수많은 신앙 고백이 담길 수 있습니다. 말로 설명해도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때론 외적인 자세와 행동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못 느끼시겠지만.. 우리는 늘 그런 상징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실 때.. 자리의 배치.. 역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지요. 우리는 늘 알게 모르게 그런 상징적인 메세지를 서로 주고 받고 있습니다. 

      헌신대에 나아오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상징적 행동이 고백하고 있는 내용을 아시면 덜 어색하실 것 같습니다. 그 고백을 드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더 좋을실 겁니다. 우선 헌신대에 나가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 안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다음으로 헌신대에 걸어나가는 것은 의지와 믿음, 그리고 갈망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시기 전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마른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저를 의지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옆에서 여러분의 기도를 도와드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하나님에게 더 이쁨을 받기 때문에,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만큼이나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런 용납에 대한 확신 없이 드리는 기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헌신대에 나오시는 분들 중에 가끔 하나님보다 저에게 집중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헌신대는 여러분과 하나님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그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이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 안에서 그 믿음을 보길 원하셨습니다. 헌신대는 그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때로는 저의 도움이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헌신카드에 ‘하나님께 재헌신하기 원합니다’에만 표시하세요. 그러면 제가 기도해 드리지 않습니다.   
    최지원 목사 드림